함경도 뀡만둣국



“설에는 꿩만둣국 한 그릇을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고 했지. 명절이면 일가 친척 이삼십 명이 밥상에 빙 둘러앉아 꿩만둣국 먹던 생각을 하면 눈물이 핑 돌아.” 1948년 혈혈단신 월남한 청진 출신의 최용문(88·함북도민회 자문위원)씨는 고향 생각에 목이 멘다. 산지가 많은 함경도 북쪽에선 대개 설에 꿩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감자를 막 갈아 넣는다는 ‘감자막갈이만두’도 있지만 색이 너무 누래서 명절에는 잘 먹지 않았다. 만두는 역시 소 맛. 귀한 꿩고기를 잘게 다져서 볶은 다음 부추 같은 야채와 함께 조물조물 버무려 만들었다. 국물도 꿩고기로 우려내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은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꿩이 없으면 닭을 이용해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중국의 영향으로 두부를 잘 넣지 않는 것은 북부지방 만두의 특징.

평안도 평양만둣국



평안도에서도 만둣국은 차례상에 빠질 수 없는 설 음식. 평양만두는 메밀이나 밀가루로 피를 빚는다. 소는 돼지고기나 꿩고기에 숙주나물과 고춧가루를 조금만 사용해 맵지 않은 이북식 배추김치 등 갖은 야채를 넣고 버무린다. 국물은 소의 양지와 사태를 넣고 말갛게 우려내 담백한 만두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평안남도 덕천이 고향인 유명철(73·평남도민회 사무국장)씨는 “평안도 만두는 어른 주먹만 해서 세 개만 담아도 그릇에 다 찼다”고 회상했다. ‘묵물’과 ‘노티’도 설 밥상에 올랐다. 묵물은 불린 녹두를 체에 걸러 오랫동안 끓인 뒤 떠먹는 죽. 노티는 조를 곱게 갈아서 엿기름과 함께 찜통에 찐 뒤 다시 엿기름에 삭혀서 지져 먹는 전통음식이다. 녹두를 갈아 고사리, 돼지고기 등을 넣어 부친 녹두 지짐도 설날 밥상에 오르는 평안도의 별미다.

황해도 왕만둣국



북방인의 호방한 기질만큼이나 투박하지만 큼직하고 푸짐한 게 북부지방 음식의 특징. 황해도에선 씨름장사 주먹만한 크기의 만두를 넣어 끓인 왕만둣국으로 설을 쇠었다. 13년간 황해도 전문음식점 ‘풍년명절’을 운영하는 옹진 출신의 추향초(61·여)씨가 회상했다. “설엔 강호동 주먹보다도 큰 왕만두 한 점을 떠서 대접에 턱 놓으면 사발 하나가 꽉 찼어. 한입에 넣을 수 없으니 숟가락으로 왕만두를 꽉꽉 으깨서 소를 떠먹었지. 여기에 흰 쌀밥을 비며 먹으면 정말 꿀맛이었어.” 돼지고기와 부추, 숙주 등에 갖은 양념을 넣어 소를 만들었다. 두부는 넣지 않았다. 두부는 물컹해서 식감을 떨어뜨려서라고 한다. 다른 북부지방 사람들처럼 황해도 사람도 사시사철 만두를 즐겼다. 서해의 풍부한 해산물 덕분에 굴로 담백한 국물 맛을 내기도 했다. 평소에 꿩만두, 토끼만두도 즐겨 먹었다.

경기도 개성 조랭이떡국



고려 왕조의 도읍이었던 개성은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개성의 조랭이떡국은 대표적인 설음식. 떡국은 가래떡을 어슷썰기 해서 끓이는데, 조랭이떡국은 흰떡을 대나무 칼로 잘라 동글동글하게 만든 뒤 다시 대나무 칼로 문질러 조롱박 모양으로 만든다. 개성만두전문점을 3대째 잇는 신부원(40·여)씨는 “조선 왕조가 들어선 뒤 박해를 받은 개성 지방 사람들이 이성계에 대한 한을 잊지 못해 그의 목을 연상하면서 조랭이떡을 썰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조랭이떡은 입 안에서 빙글 돌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질감이 감미롭다. 가래떡국은 끓였다 식으면 풀어지지만, 조랭이떡국은 먹다 남은 떡을 찬물에 헹구면 새 떡이나 다름없다. 개성 만둣국도 설 밥상에 올랐다. 소에 고기나 김치를 적게 넣는 대신 숙주, 부추 같은 야채를 많이 넣어 개운한 맛이 특징이다.

강원도 강릉 두부떡만둣국



동해의 바닷물로 간을 맞춘다는 초당 두부로 유명한 강원 강릉. 황태 해장국에 큼짐한 두부를 넣어 진한 국물 맛을 더하듯, 설에 먹는 떡만둣국에도 어른 손가락만 한 두부를 숭숭 썰어 넣어 먹는다. 대도시에선 두부떡국이 웰빙 바람을 타고 건강식으로 등장했으니 선조의 선견지명이라고나 할까. 강릉시 경포동의 이영숙(58·여)씨는 “스물여섯에 경남 밀양에서 강릉으로 시집왔는데 처음에는 떡국에 두부를 넣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다”며 “아마도 강릉 지방이 예전부터 두부로 유명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두부 떡만둣국은 두부 특유의 부드러움과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이씨는 “두부 떡만둣국 말고도 강릉에서는 수리취를 찹쌀가루와 함께 빻아 만드는 취떡도 설에 많이 해 먹는다”고 말했다.

충청도 날 떡국



날떡국은 떡을 찌는 일반적인 과정을 생략한 떡국이다. 수제비처럼 날반죽을 그대로 끓는 장국에 넣어 익힌다고 생각하면 된다. 생떡국이라고도 한다. 조리법은 멥쌉을 먼저 잘게 빻은 뒤 송편 할 때처럼 따듯한 물을 조금씩 묻혀 가며 되게 반죽한다. 찬물로 하면 찰기가 없어 반죽이 뭉쳐지지 않는다. 반죽이 만들어지면 두 손으로 굴려서 가래처럼 길게 만든 뒤 어슷 썬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보통 떡보다 2배 정도 두껍게 썬다는 것. 얇게 썰면 끓는 물에서 풀어진다. 이것을 그대로 끓는 소고기나 해물 장국에 넣어 익힌다. 예전엔 주로 충북 지역에서 즐겨 먹었다. 청원 출신의 성칠복(69·여)씨는 “1950년대까지 고향에선 설에 날떡국을 해먹었다”며 “쫄깃함은 보통 떡국보다 덜하지만 반죽이 우러나 뽀얀 국물 빛깔과 구수하고 칼칼한 국물 맛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전라도 닭장 떡국



“호남에선 설에 손님이 오면 금방 대접하기 위해 미리 닭장을 만들어놓고는 이것으로 국물을 낸 닭장떡국을 끓였죠.” 남도음식 전문가인 순천대 조리과학과 정현숙(49·여) 교수의 말이다. 닭장은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에 닭고기를 썰어 넣은 뒤 졸여 낸 음식. 닭장은 김치처럼 큰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어 보관하다가 명절에 손님이 오면 급히 꺼내 국물을 내곤 했다. 이미 닭장에 간이 돼 있어 간편하게 국물을 우려낼 수 있었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는 고기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닭장떡국은 간편하면서도 간간한 맛이 특징. 정 교수는 “어머니가 설에 해주신 닭장떡국은 떡도 먹고, 떡국 안에 들어간 닭고기를 발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경상도 통영 굴떡국



남해안 청정해역을 끼고 있어 굴로 유명한 경남 통영에서는 설 차례상에도 굴을 넣어 국물을 우려낸 굴떡국이 오른다. 굴떡국은 소고기로 우려낸 육수보다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굴 특유의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제철을 맞아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굴과 쫄깃쫄깃한 떡 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굴떡국은 먼저 찬물에 굴을 넣어 끓인 뒤 굴에서 맛이 우러날 때쯤 떡을 넣어 만든다. 굴과 함께 조개나 새우 같은 해산물을 다져 넣어 국물 맛을 더욱 감칠맛 나게 하기도 한다. 통영시 문화관광과 김정화(34·여)씨는 “통영 사람들은 대부분 설에 소고기로 맛을 낸 떡국보다는 굴떡국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전라도, 황해도 해안지방에서도 떡국에 굴을 넣어 맛을 냈다고 한다.
Posted by 가마솥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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